존 오프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공포와 일상 속에 스며든 소리의 힘
2024. 10. 24. 01:21ㆍ컬쳐(상품권 ㅎㅎ)
▶ 개봉 : 2024.06.05.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드라마, 전쟁
▶ 국가 : 미국, 영국, 폴란드
▶ 러닝타임 : 105분
▶ 감독 : 조나단 글래이저
▶ 주연 : 산드라 휠러, 크리스티안 프리에델
The Zone of Interest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영화입니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깊은 생각을 안겨주는 공포 영화로, 그가 Under the Skin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작품입니다. 영화는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그 옆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평범하게 여기는 일상과 그 뒤에 숨겨진 끔찍한 현실을 대비시킵니다. 이 영화는 화면보다는 소리에 집중하여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며, 오랜 시간 동안 그 여운을 남깁니다.
일상과 악몽이 교차하는 가족의 집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에 위치한 루돌프 헤스(크리스티안 프리델) 가족의 저택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잘 꾸며진 집에서 헤스와 그의 아내 헤드비히(산드라 휠러)는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가지만, 그들의 일상 뒤에는 끊임없는 참상이 존재합니다. 이 가족의 행복한 순간은 눈부시게 햇살이 비치는 정원에서 펼쳐지지만, 가까운 곳에서 수용소의 참혹한 소리가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리를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갑니다.
영화는 이런 설정을 통해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합니다. 한쪽에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다른 한쪽에는 인간이 벌이는 잔혹한 현실이 있습니다. 글레이저는 관객에게 그 잔혹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소리와 장면의 대비를 통해 그 공포를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으며, 우리는 그 흔적을 여전히 느끼고 있습니다.
소리로 만든 공포의 세계
The Zone of Interest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사운드 디자인입니다. 존니 번과 타른 윌러스가 설계한 이 영화의 소리는 관객이 스크린 밖에서도 아우슈비츠의 공포를 느끼도록 합니다. 영화의 오프닝은 검은 화면과 함께 시작되며, 화면 대신 불협화음의 소리가 흐릅니다. 이 소리들은 관객들에게 눈으로 보기 전에 귀를 먼저 열게 만들며, 이후 펼쳐질 현실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줍니다.
영화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울음소리인지, 기차의 경적 소리인지, 혹은 집 안의 아기 울음소리인지 모호하게 들려옵니다. 이처럼 불확실한 소리들은 관객이 그들의 상상으로 빈틈을 채우게 만듭니다. 헤스의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수용소의 소리가 그들의 일상 속에서 가늘게 들려오지만, 영화 속 가족은 그 소리들을 무시합니다. 관객만이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뒤에 숨겨진 참상을 상상하게 됩니다.
공포의 표현을 넘어서: 소리의 힘
감독 글레이저와 사운드 디자이너 번은 의도적으로 학살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소리를 통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공포를 자극합니다. 번은 이 작업을 위해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세밀하게 연구하고, 당시의 소리들을 재현했습니다. 실제 파리의 시위 현장에서 수집한 군중의 목소리, 독일 함부르크의 밤거리에서 녹음한 취객들의 소리 등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며, 그 진정성을 높였습니다.
영화는 점차 관객이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합니다. 처음에는 참혹한 소리에 충격을 받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소리에 둔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영화가 의도한 메시지입니다. 인간은 잔혹한 현실을 계속 접하면 그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The Zone of Interest는 단순히 공포를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잔잔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다
The Zone of Interest는 독특한 연출과 사운드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사운드 디자이너 번의 말처럼, “소리는 당신의 피부 아래로 파고든다.” 이 영화는 관객의 감각을 일깨우고, 우리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역사의 잔혹함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그 소리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쉽게 지울 수 없는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는 단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과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글레이저는 The Zone of Interest를 통해, 우리는 결코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며, 그 소리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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